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슐리외 추기경 (문단 편집) === 내치: 절대왕정을 확립하다 === [[파일:external/www.larousse.fr/1312276-Philippe_de_Champaigne_le_cardinal_de_Richelieu_%C3%A9crivant.jpg]] [[루이 14세]] 때 꽃을 피운 절대왕정을 사실상 확립한 인물로서, 국왕권 강화를 위해 재가를 얻지 못한 귀족 영주 소유의 모든 요새나 [[성(건축)|성]] 시설을 파괴했고, 사사로이 벌어지는 결투도 금지시켰으며, 여기에 반발한 [[개신교]] 신자들이 [[영국]]의 지원을 얻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쳐부수고 화평을 맺어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여 사면해주는 대신 정치 참여를 금지시켜 [[프랑스]]의 안정을 가져왔다. 위에 나왔듯이 결투를 법적으로 금지해서 많은 불평을 들었다.[* 이 때문에 《[[삼총사]]》에서 초반에, 리슐리외의 친위대가 [[삼총사]]와 [[달타냥]]을 결투를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하려 드는것이 제대로 된 고증이다.] 사실 <결투 금지법>은 가톨릭 교회에서 결투를 [[파문]]에 처할 대죄로 명시한 것도 있고, [[사적제재]]를 금하고 제도권에 의한 재판을 활성화하여 왕의 사법권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특권을 빼앗긴다고 느낀 귀족 세력이 리슐리외에게 반발한 것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트레빌 총사대장도 실존인물이며 리슐리외의 반대파인 것도 같은데, 트레빌이 리슐리외를 적대한 것은 왕에 대한 충성심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리슐리외의 왕권 강화로 귀족인 자신들의 입지가 약화된다고 느껴서 왕권 강화론자인 [[추기경]]을 적대한 것이다.[* 후에 리슐리외 암살 음모에 왕을 가담시키려고 부추기기도 했다.] 이러한 왕권 강화 노력은 당시 권력을 누리던 귀족 세력의 큰 반발과 불만을 불러왔고 그 때문에 리슐리외는 온갖 [[중상모략]]과 비방에 시달렸다. 소설 《[[삼총사]]》에서 악역스럽게 나오는 것도 이때 만들어진 이미지가 후세까지 이어져서라는 설도 존재한다.[* 참고로 《삼총사》 내에서 웃기게도 리슐리외가 그렇게 금지시켰는데도 리슐리외의 부하들은 몰래 결투를 하곤 했다. 작중 초반부 달타냥이 우연찮게 삼총사 전원과 결투를 벌이게 되고 아토스랑(아토스-포로토스-아라미스 순이었다. 이랬던 이유는, 달타냥이 결투를 건 순서가 이랬기 때문) 붙으려는데 리슐리외의 부하가 나타나서 결투를 하려했다는 걸 리슐리외 추기경님께 알릴 것이라고 하니까 아토스는 너희들도 몰래 결투하던데 좀 봐달라고 말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그러나 실상은 상술한 대로 '''[[프랑스]]의 발전과 왕권 강화에 헌신을 다한 유능한 [[명재상]]'''이었다. 그 외에도 [[관료제|관료제도]]를 확립하고, 상업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우정(郵政) 제도에도 공적을 남겼다. 게다가 [[가톨릭]]에서 최고위급 [[성직자]]이면서도 합리적으로 대처해서 종교만을 따지지 않고 국가적 이득을 더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이득을 위해서라면 다른 종파와 기꺼이 손잡았고, 만일을 위하여 당시 유럽에서 이교도로 배척받던 [[오스만 제국]]과 우호관계를 맺어서 [[이슬람]] 국가들과도 손잡을 준비를 했다. 이러다보니 [[프랑스]] 내 가톨릭 골수강경파들에게 배신자 및 이단자 소리도 들었으나, 이런 소리는 그냥 무시했다. 이와 관련한 일화도 있는데, [[개신교]] 신자들의 반란을 진압했을 때 측근들이 "그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자, "개종은 칼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보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며 거절하고, 항복한 개신교 신자들을 용서해주는 관용을 베풀었다. [[프랑스어]]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문화 발전을 위해서 '''[[아카데미 프랑세즈]]'''(=[[프랑스]] 아카데미)를 창설하기도 했다. 이 기관은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으며,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지명되는 것은 문화예술인에게 매우 큰 영광으로 인식되고 있다. 동양에서는 흔히 '''한림원'''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한편 반대파가 많고 귀족들의 증오를 많이 받아서 늘 암살과 실각의 위험 속에서 살았다. 그 때문인지 리슐리외는 정보를 얻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프랑스]]의 각계 각층에 심복과 첩자를 심어두어 반대파의 음모를 찾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 덕에 그에 대한 암살을 준비하던 귀족들을 찾아내서 남김없이 소탕하여 암살이나 실각을 피할 수 있었던 적도 여럿 있었기에 귀족들도 나중에가면 리슐리외를 증오하지만 자신들이 그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무서워했다. 물론 반대파들은 이걸 비난하면서 경찰국가를 만들었다고 하기도 한다. 이 암살 시도는 정말 많아서 죽기 직전까지 이어졌고, 심지어 생애 마지막으로 겪은 암살음모는 [[루이 13세]]가 가담했다는 설까지 존재한다. 이 때문에 리슐리외는 왕과 대면할 때도 경호원들을 대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를 싫어하던 주요 정적은 [[루이 13세]]의 모후인 마리 드 메디시스와 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 가스통, [[왕비]]인 [[안 도트리슈]] 등이었다. 이들은 평생동안 끈질기게 이적행위와 내란 및 암살 음모를 꾸미면서 리슐리외를 괴롭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